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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 중소기업 트럼프 공포에 부들부들

환율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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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RENCY WAR

“중국과 일본보다 한국과 대만이
최악의 환율 조작국(worst offenders)이다.”
- Financial Times, 2017.2.13
영국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2월 13일(현지 시각) 이 같은 부제를 단 기사를 냈다.
환율조작국 단골 손님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중국과 일본보다
한국이 환율을 조작했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화들짝 놀란 정부와 한국은행은
“해당 기사는 사실을 왜곡했다”며 즉시 항의 서한을 보냈다.
환율 조작국 변방에 있던 한국이 환율 전쟁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EPISODE 3

중소기업 트럼프 공포에 부들부들

환율변동에 속수무책…일부 대기업만 대비책 마련

배동주 기자 ju@sisajournal-e.com

수출기업 고민이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우선(America first)’을 외치며 환율조작국 지정 등 통상 압박을 강화하는 탓이다. 미국 재무부가 4월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지난해말 1200원 수준을 유지했던 원·달러 환율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1120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미국이 한국을 환율조작국에 지정하면 원화 강세는 가속화한다. 원화 강세는 수출기업 매출 감소와 영업이익률 하락으로 이어진다. 원·환율 하락은 원화 환산 수입 감소로 이어지는 탓이다. 가격 경쟁력도 떨어진다. 원·달러 환율 100원 하락은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 각각에 7000억원, 3000억원 규모 환손실을 초래한다. 미국과 중국의 날선 통상 분쟁까지 겹쳐 중국 수출 감소도 예상된다. 중국이 미국으로 수출하는 완제품의 부품과 반제품을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기 때문이다.

수출산업경기전망지수(EBSI)도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EBSI는 수출기업이 전망하는 수출경기를 나타내는 지표다. 수출여건이 전분기 수준에 머물 것으로 기대되면 100, 전분기보다 악화될 것으로 예상하면 100보다 작은 값을 띈다. EBSI는 올해 1분기 93.6으로 지난해 4분기 94.5보다 떨어졌다. 특히 환율 변동성 확대가 주요 수출 애로 요인인 것으로 파악됐다.

수출 대기업들, 환율변동 예의주시…
대응책 마련에 분주

대기업 중심으로 환율 급변동 위험에 따라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한다. 특히 자동차 업계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자동차 품목이 대미 수출의 33%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지난달 미국 현지 법인과 환율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채널을 구축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가격경쟁력 약화에 대비해 원가절감 방안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현지 공장과 연계해 환율변동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반도체 제품 대부분을 수출하는 SK하이닉스는 환관리위원회를 구성하고 환율변동을 확인하고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생산 제품의 95%를 수출하는 터라 환차손을 줄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환율 변동에 따라 결제 시기를 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출 대기업들은 환율변동 추이를 분석해 외화 유출입을 통화별·만기별로 일치시켜 외화자금 결제기일을 조정하고 있다. 이에 통화선도, 통화옵션, 통화스왑 등 외환파생상품을 헷지 수단으로 활용하기에 앞서 환율변동을 눈여겨 보고 있다.

국내 주력 수출 업종인 정유·철강 업계도 환율 하락에 따른 손실을 막기 위해 감시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포스코는 위험관리 조직을 따로 두고 환리스크 헤지전략·실행방안, 프로젝트별 환리스크 관리현황 점검, 환율 동향 분석·전망 등을 분석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올해 들어 거의 매일 환율 흐름과 관련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영준 경희대 무역학과 교수는 “국내 제품의 수출 비중이 늘면서 원화 가치 상승에 따른 영업이익률은 지속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어 수출 대기업 대다수는 환율변동 감시와 환변동보험·선물환거래를 담당하는 전담 조직을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 대책 없이 환율 위험 고스란히 떠 안아

대기업과 달리 수출 중·소기업 대다수는 환율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외환 관리에 투입할 별도 인력을 구성할 여력이 없는 탓이다.

중소기업청이 중소·중견기업 1000곳(중소기업 805곳, 중견기업 195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중소기업 87.3%는 급격한 환율 변동에 대한 대응책을 갖추지 못했다. 중견기업 66.2%도 마찬가지다. 전체 조사대상 83.2%가 환율 변동에 속수무책인 셈이다.

GM과 크라이슬러에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자동차 부품회사 관계자는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경우 환율이 하락하고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 수익구조가 나빠질 것으로 예상하지만, 이를 타계할 경영 전략을 세우기는 불가능하다”며 “환변동보험에야 들었지만, 환율이 크게 하락하면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중소기업은 수출입 규모가 작아 손익분기점 환율이 대기업보다 높다. 달러로 번 돈을 원화로 바꿀 때 환율이 높을수록 환전 이익이 커지는데 원화 가치가 올라가면서 발생하는 손실을 흡수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중소기업은 환율변동 흐름을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환위험 관리 및 결제 시기 조정을 담당할 인력 꾸리기도 벅찬 상황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기업들은 그나마 환율변동 같은 시장 변화에 대비해 전문인력 확보, 현지 공장건설 등 사업 방어 전략을 구축했지만 중소기업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자동차 산업으로만 한정해도 중소 부품 업체는 전체 생산량의 70% 이상을 국내 완성차 업체와 거래하고 있어 완성차 업체가 중소 부품업체 손을 놓으면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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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 가공 기계를 만드는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환율변동에 대처할 뚜렷한 대응 방안은 없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완제품을 수출을 위해 원재료를 수입하고 있는데 환율이 떨어지면 원재료를 수입하는 가격이 내려가 상쇄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환율조작국 지정으로 가격이 올라 주문 물량을 줄까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환율조작국 지정, 매출 감소 피할 길 없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손익분기점 평균 환율은 1045원이다. 중소기업은 1046원, 대기업은 이보다 조금 나은 1040원이다. 이에 적정 환율은 중소기업이 1073원, 대기업이 1069원 수준이다. 아직까지는 국내 수출기업들이 환율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환율이 내려가지 않았지만, 지속해서 환율이 하락할 경우 수출 전선에 빨간불이 켜질 수도 있다.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돼 원화 가치가 가파르게 상승하면 장기적으로 업계 전체가 수조원에 달하는 경영 손실을 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현대차 글로벌경영연구소는 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 시 국내 자동차 산업 매출액이 4000억원 가량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문제는 환율조작국 지정이 트럼프 행정부가 대미 경상수지 흑자 국가 대부분에 행하는 통상 압박의 여러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게다가 미국의 통상 압박에 대해 중국이 보복 카드를 꺼내는 등 강대강으로 구도를 강화하면 국내 수출기업 타격은 걷잡을 수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중 간 교역 감소가 현실화되면 한국은 ①중국으로 보내는 재수출용 중간재 수요 감소 ②성장둔화로 인한 중국의 내수 투입용 수요 위축 ③중국 겨냥 수입규제조치에 동시 노출될 위협 등을 받게 된다. 국제산업연관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미국 수출 10% 감소 시 중국 중간재 수요 하락에 의해 한국의 총 수출은 0.25%로 감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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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보유고 늘리고 수출시장 다변화해야”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국내 수출기업들은 매출과 영업이익 전망치를 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개별 노력에 앞서 정부의 근본적인 해결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단기적인 환율변동 원인인 외화 유출입 변동성을 완화하는 한편 충분한 외환 보유고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영준 교수는 “우리나라는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큰 만큼 외환보유고 유지를 통한 대외채무 규모 유지가 필요하다”라며 “또 미국과의 통상 관계를 유지해나가기 위한 정책 조율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환율 조작국 지정 이야기만이라도 나오지 않게 정부가 움직이는 게 최선”이고 말했다.

이어 최 교수는 “지금 한국 수출기업이 맞은 위기는 미국과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한 여파”라며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새 시장을 개척해 한 곳에서 발생한 위기에 국가 경제 근간이 휘청거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PRODUCTION

기획 이철현
취재 송준영 이용우 배동주
촬영·편집 권태현 차여경
디자인·개발 김태길 조현경 케이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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